[미움받을 용기2] 왜 '상과 벌'을 부정하는가
교실은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교실의 주권자는 학생들입니다. 청년은 철학자에게 묻습니다. 교사의 상벌이 독재 파시즘의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벌없는 교실이 가능할까요?
철학자는 개미에 돋보기를 비추어 빛을 쪼인 이야기를 해줍니다. 프로이트는 외부환경에 대해 자신을 지키는 공격성 방어기제로 그 행동을 설명하지만, 아들러는 그저 아이들은 모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야단 맞을껄 알고, 자신의 행동이 나쁜 걸 아는데도 그 행동을 하는 애들은 뭘까요?
아들러는 5단계로 나누어 문제행동을 설명합니다. 점차 심해진다는 의미에서요. 이 행동을 목적에 따라 살펴봅니다. 1단계는 칭찬요구입니다. 착한 아이나 우등생을 연기하는 것이죠. 교사는 그 착한 행동이 아니라 평소 그 사람의 관심사에 주목하고 공감하며, 평소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2단계는 주목 끌기입니다. 칭찬 받는데에 실패하면 못되든 뭐든 주목받기 위해 행동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확고히 '있을 곳'을 원하는 것이죠. 야단을 맞기를 바랍니다. 교사는 존경을 표함으로써 특별해질 필요가 없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3단계는 권력투쟁입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하고 싸움을 걸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거죠. 반항 또는 불복종입니다. 교사는 아무것도 하지말고 방치해야 합니다.
4단계는 복수입니다. 소중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의 복수를 하는 겁니다. 사랑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증오를 하게 됩니다. 좋은 관계가 되지 않더라도, 증오나 혐오의 감정을 통해 그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자해나 방에 틀어박히는 것도 이 맥락입니다. 반사회적 모임에 들어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기괴한 취미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만 도울 수 있습니다. 다른 교사나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요.
5단계는 무능의 증명입니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을 마음 깊이 싫어하게 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믿는 겁니다. 나를 포기해, 기대하지 마 등으로 나타납니다. 전문가도 힘들어하는 단계입니다.
'소속감', '공동체 안에서 위치 확보하기'가 모든 문제행동의 목적입니다.
문제행동 앞에 야단을 치면 폭력으로 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애들이 싸우면 싸움의 원인이 아니라 목적에 주목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합의입니다.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면 폭력에 의존하고, 그건 인간으로 미숙한 행위입니다.
아들러는 재판관의 자리를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폭력적인 행위와는 별개로, 아이들이 미숙한 사람이라고 살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사람을 경멸합니다. 니버의 기도처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핵심은 삶의 방식입니다.
칸트는 자립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미성년 상태에 있는 이유는 이성이 결여되어서가 아니라, 이성을 사용할 용기가 없어서라고요. 그는 타인의 지시를 따르며 사는 것이, 생각도 안해도 되고 책임도 안져도 되기 떄문에 사람이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미성년 상태에 머물도록 하고, 지나친 간섭과 과보호를 합니다. 아이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가 됩니다.
"친구 집에 가서 놀아도 돼?" 라는 아이에게, "물론이지"라는 부모와 "숙제를 다 하고 나서"라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는 아이를 의존적이고 무책임한 위치에 놓습니다.
멋진 교육자 혹은 부모의 태도는...
본인의 인생은, 매일의 행동은 전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줄 것. 그리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자료-예를 들면 지식과 경험-가 있음 제공해 줄 것. 언제든 돠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려주되, 너무 가깝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지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