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남한산성'이 핫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김훈이 지은 소설이다. 나는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소설은 읽었다.
소설에서 그는 남한산성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투쟁과 전쟁 상황의 참혹함을 표현했다. 소설은 상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소설을 잇는 뼈대는 인조 실록에서 비롯되어 사실에 가깝다.
남한산성에서 며칠을 버티고 나서 밖으로 나가는 상황은 같았다.
다만 청이 철군하고 나가느냐 먼저 나가서 청에게 항복하느냐의 차이였다.
영의정 김류의 눈으로 본 주화와 척화의 입장은 목숨을 건 것이었다. 청의 주력이 조선을 침공한 동안, 명이 요동을 비롯한 청의 텅 빈 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 그 떄까지 남한산성에서 잘 버티면, 청이 철군한 이후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자들은 임금의 분노에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반면, 버티지 못하고 남한산성에서 나가 항복을 한다면, 청과 전쟁을 벌이자 했던 자들은 용골대의 칼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최명길과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주화와 척화는 서로 싸웠다.
남한산성 내의 상황은 끔찍했다. 버티는 동안 군사들은 얼어 죽고, 말은 말먹이가 없어 굶어죽고, 백성의 식량으로 군사들을 먹인다. 군사들의 동상을 방지하기 위한 거적을 뺴앗아 말에게 먹이를 주고, 그 말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군사들에게 말고기를 먹인다.
1636년 12월 14일 ~ 1637년 2월 2일. 겨울이 봄이 될 때까지 성 안에서는 말(speech)들의 전쟁만 오갔다. 말들의 전쟁은 당시 상황에서 어떠한 해결책도 안겨주지 못했고, 결국 인조는수많은 죽음과 폐허가 된 성을 뒤로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항복한다.
책을 읽고 말의 전쟁을 하고 있던 성 안의 상황과 내가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나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편이라 말이 많다. 말이 많으면 망상을 많이 할 가능성 높다.
학문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많은 것은 가설을 많이 세우는 거다. 연구는 가설 하나하나를 데이터를 통해 검사하며 나아간다. 행동 없는 말은 데이터 없는 가설이나 마찬가지다. 증명되지 않는 가설을 마구 세우는 것은 절대 좋은 연구 태도가 아니다.
반면 좋은 연구는 가설을 조금만 세워도 많은 데이터와 실천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이번에 노벨 경제학상은 리처드 탈러 교수가 받았다. 그는 자신의 책 ‘넛지’를 약간의 가설과 많은 데이터로 구성했다. 데이터를 통해 행동경제학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었고, 그 스토리가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것이다.
남한산성은 나를 돌아보게 해 준 책이었다. 나는 남들에게 말로서 나를 포장하고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가 혹은 실력을 쌓아 실력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인가. 당당히 대답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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