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해 나만의 가설을 만들었고,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무엇인가 답답하게 막힌 부분이 있었다.
‘행복이란 진정으로 무엇인가?’ ‘좋은 건가?’라는 두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서은국 교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본성의 선한 천사],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캐선 선스타인의 [넛지], 댄 히스 형제의 [스위치]. 이 학자들과 책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내 생각에는 심리학을 20세기 프로이트 철학을 넘어서 과학의 세계로 끌어들였기 때문일 것 같다.
과학의 세계로 들어간 심리학은 우리가 주로 이성을 통해서 행동할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과 직관에 많이 의존한다고 말한다. 서은국 교수는 이러한 관점으로 행복을 바라본다.
이제부터는 주로 교수의 말로 서술하겠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이며, 의식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을 통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빨간 사과를 생각해보자. 빨간색은 사과 안에 있지 않고, 사과 표면에 반사된 빛의 파장이 우리의 시각세포를 건드려 신경반응이 뇌에서 합성되어, ‘빨갛다’는 경험을 만든 것이다. 행복감도 그렇다. 행복감도 뇌에서 합성된 경험이다. 그렇다면 이 경험은 왜, 언제 뇌에서 발생할까?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들은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산다. 두목과 그가 거느리는 몇 참모들의 독재하에.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마을 전체 침팬지 새끼들 중 86% 가량이 정권을 쥔 이들의 자식이다. 옛날의 인간도 이들과 비슷했다.
뇌는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생존지침서’다. 생존정보를 USB 대신 DNA에 저장하여 유전자 형태로 우리 뇌에 넣어 놓았다. 우리는 의식을 통해서는 이 암호를 전부 알아낼 수는 없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제리 코인 교수는 호모사피엔스가 문명인의 모습으로 산 것은 아주 잠깐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침팬지는 약 600만년 전에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졌고, 문명 생활은 길게 잡아야 6천년 전에 시작했다. 인류의 탄생을 365일로 환산해 보면, 고작 2시간만 문명생활을 한 셈이다. 600만년 간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버릇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물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연구는 심지어 심리학 최고 권위지에 실렸다고 한다. 모든 문화에서 근친 성관계는 금기시된다. 근본 이유는 근친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돌연변인이 생겨 생식 능력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일종의 ‘근친 감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리버만과 동료들의 연구는 수개월에 걸쳐 여대생들의 문자와 전화의 빈도를 분석했다. 아버지와 딸은 유구한 세월동안 근친관계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사이다. 가임기에 가까워질수록 여대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 가임기에는 통화빈도와 시간이 줄어들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또 다시 정상 패턴으로 돌아간다.
이런 동물적인 모습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은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련된 존재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이 착각에 다윈의 진화론은 찬물을 끼얹는다.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 것이다. 물리법칙에 의해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이유와 목적이 있어 보인다. 봄비는 꽃을 피우기 위해 내리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을 철학에서는 ‘목적론’이라고 한다.
이 생각의 원조는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 위에 현재의 행복 연구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는 한 철학자가 가졌던 견해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인간이 우주의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에 다윈은 찬물을 끼얹는다. 진화론은 다윈의 개인적 견해가 아니다. 이는 현재까지 모든 과학적 방법들이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사실이다.
진화론의 이렇게 말한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개에게 먹이를 주려고 하면 재롱을 부린다. 개가 먹이를 먹으려고 하는 이유는 개의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이나 즐거움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재롱이 아니라 생존이다.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교수의 생각에는 행복이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냥을 하고 짝짓기를 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행복이 생존을 위한 도구라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캘리포니아 해변 근처에는 남들이 해변에 흘린 동전이나 반지 같은 귀중품을 찾기 위해 동전탐지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전탐지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쇠 막대가 동전에 가까워지면 ‘삐’라는 소리가 들린다. 신호음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동전이라는 목표를 찾는 것이다.
우리 뇌는 단백질로 만들어진 동전탐지기다. 뇌의 시상하부는 쾌감과 연합된 경험을 기억속에 확실히 남긴다. 쾌감의 신호가 켜지며 발생하는 감정을 심리학에서는 ‘긍정적 정서’라고 한다.
반대로 ‘불쾌’의 감정을 느끼는 경우는 ‘부정적 정서’다.
쾌감과 불쾌의 신호는 우리를 위험을 피하고 기회를 잡도록 해준다. 행복한 사람은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사람이다. 우리 뇌의 행복센터는 언제, 어디에 접근할 때 가장 확실하게 켜질까?
식량 확보라는 생존 과제와 짝찟기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인간의 뇌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고 한다. 로빈 던바 교수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가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려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생존 비법 패키지’를 전수받았다. ‘생존 비법 패키지’에는 두 가지가 들어 있다. 먼저 ‘고통’이라는 경험이 있다. 뇌에서 육체적 고통을 인지하는 부위와 사회적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인지하는 부위는 같다. 팔 잘린 사람과 여자친구랑 헤어진 사람은 뇌에서 동일한 부위가 자극된다.
엽기적인 연구가 하나 있다. 대학생 62명의 사회적 고통을 측정하고, 이들을 나누어 통제집단에게는 효과가 없는 알약을, 실험집단에게는 진통제를 복용하도록 했다. 진통제를 복용한 집단이 사회적 상처를 덜 느꼈다. 진통제가 사회적 고통을 덜어준 것이다.
‘생존 비법 패키지’에 들어있는 다른 내용물은 ‘쾌감’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절대적 자원 중 하나가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 행복은 ‘reset’ 버튼을 가진 감정이다. 아이스크림과 같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외향성은 사회성이라는 즙을 듬뿍 머금은 과일이다.
-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사회가 집단주의 사회보다 행복을 느끼기 더 좋은 사회다.
- (남들의)‘가치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다르다.
행복을 다룬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행복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좋았고, 철학에서 벗어난 과학적 분석이 좋았다.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보다, 왜 행복해야 하는 가’라는 독특한 질문을 던지는 교수가 좋았다.
이 책은 불과 192쪽의 책이다. 독해력이 나빠도 도전해 볼만한 분량이다. 교수가 엄청난 필력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게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한 책은 유시민 작가 책 이후로 처음 본다.
행복의 실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강추 하고 싶은 책이다.
서은국 교수의 세바시 강연 링크로 서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