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작성한 페이스북 서평입니다.

 

1. 사회과학

 

통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널드 피셔는 인과관계의 방향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든다. 이 것을 <실험계획법>이라고 한다. 실험계획법을 이용하여 인류는 ‘사회’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학문을 사회과학이라고 한다.

 

사회과학이 도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길래 굳이 난해한 방법을 사용하여 여러 학문들을 과학을 통해 설명하려 할까?

 

사회과학 :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탐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쉽게 말하면 사회 현상을 과학처럼 일정한 방향성이나 관계를 찾아 설명하려는 학문인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일정한 방향성이나 관계를 찾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떄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이상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과학은 몇 천년 간 인류가 궁금해 했던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기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행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심리학 연구가 시작되었을 수 있다. 적은 돈으로 어떻게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이 궁금해서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을 수 있다.

 

실제로 내 주변의 사회과학 전공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해 화폐를 공부하고 비트코인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널리 퍼뜨려 경알못을 일꺠워 줄 수도 있기도 하고, 교육학을 전공하여 어린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게 격려해주면서 느리지만 효과적으로 수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체감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과학도 어디엔가는 있지 않을까?

 

2. 개인주의자 선언

 

나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동아리 대표자를 그만두고 그 집단에서 나온 적이 있다. 그 때 동아리 내부의 일부 사람들의 폭력에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다. 며칠 전 당시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조금은 이기적이면서, 상처받기도 했던.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 시절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내 상처도 거의 다 나았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다시 받지 않기 위한 해답은 여전히 없었다.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던 중 우연히 문유석 판사의 칼럼을 읽게 되었다. 많은 대한민국 상위 1% 기득권층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판사의 글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 <개인주의자 선언>을 펼쳐 들었다.

 

이 책에서 문유석 판사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개인주의’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개인’이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진영논리가 가득찬 정치, 무한경쟁 그리고 서열화 된 학벌 같은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문제들의 구조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서구 민주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 전제로 하고, 권력자를 철저히 불신해 권력을 분리하여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사고방식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민법, 상법, 소송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 정교하게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만든 부분들, 애초에 인간 세상에서 최선은 성취하기 힘들다 보고 이해 당사자들의 투쟁을 통해 적정선에서 타협하도록 한 냉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 p103 중
자본주의 체제이면서도 그 정치적 기본 토대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이유도 제대로 된 순서를 밟지 못했기 떄문이 아닐까.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공존하던 1930년대 독일사회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이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내 대학시절의 한국 사회도 그랬다. 고도성장기의 자본주의, 전체주의적인 군부독재,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문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이념인 20세기 초반의 러시아혁명 이론부터 20세기 후반 유럽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결핍되어있던 것은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 토대인 합리적 개인주의였다.

- p104 중

 

이 대목을 통해 내가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방향성이 조금은 정해진 것 같다.

구체적인 것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해봐야 하겠지만..

 

3. 보너스

 

이 책은 합리적 개인주의적 태도를 취하자는 주제 의식에 따라 여러 짧은 글들을 모아서 구성하였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 이상의 생각이 담겨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다양한 생각의 종합서나 마찬가지다.

 

초중반부의 글들은 책이나 영화, 공부 등을 통해 생각한 것들이 많았고, 후반부의 글들은 인간관계나 법 관련경험을 통한 것들이 많았다. 많은 글을 통해 여러 가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크게 2가지의 내용이 기억이 남는다. 먼저,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소개한 글이다. 저자는 이 책을 행복의 서열화를 해결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소개했다. <행복의 기원>에 따르면, 행복감은 사회적인 교류가 많아지면 커진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보다 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기준이 조금 다를 뿐이다.

 

다른 기억에 남는 내용은 영화 <카트>와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다. 작가는 애들을 국어학원에 보내보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황석영의 <객지>, 김동인의 <감자> 등이 커리큘럼에 있다고 했다. "수십 년 전의 빈곤,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읽히면서 정작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 생생한 이야기들은 시험에 안 나온다고 외면하는 건 온당한가"라며 묻는다.

 

영화 <카트>는 노동자와 약자의 편을 자처하던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에 벌어진 비정규직 계산원에 대한 강자들의 탄압을 보여준다. 오로지 돈을 아끼기 위해 사람의 생계를 위협하고, 그 위협에 파업으로 저항하는 그들을 용역을 동원해 짓밟아 버린 끔찍한 현실을 보여준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계열을 포함하여, 국회는 그들의 고통에 침묵했으며, 아무도 그들의 곁에 서있지 않았다. 사자들의 싸움에서, 투표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초식동물 몇 마리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

 

1970년, 단지 헌법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며 분신한 전태일의 1인 시위 이후, 47년이 지났다.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세상은 오로지 약자들이 무지하고 무능함으로서 유지되어 왔고, 약자가 아닌 모든 자들의 침묵이 그것을 도왔다. 나는 침묵에 참가하지 않겠다. 이 문제를 공부하고, 실제로 법적인 공부를 통해 그들의 문제를 돕고,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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